클리닉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어요..."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난 건지 그냥 지친 건지, 외로운 건지 그저 피곤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누군가 "지금 기분이 어때요?" 하고 물으면 막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냥요",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가장 익숙합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성격의 문제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무뚝뚝한 사람, 차가운 사람, 속을 모르겠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원래 좀 그래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해서 감정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매우 강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다만 그 감정에 닿고 이해하는 길이 오래 막혀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험은 대개 아주 오래된 관계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슬프다고 말했을 때 "그게 뭐 슬플 일이냐"는 반응을 들었거나, 화가 났을 때 "그러면 안 된다"는 제지를 받았거나, 두렵고 무서웠을 때 그 마음을 함께 견뎌 줄 사람이 없었던 경우들입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마음은 점점 감정을 멀리 두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참는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 자체가 잘 느껴지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과 감정 사이에 두꺼운 벽 같은 것이 생긴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잘 모르겠다"는 말은, 단순한 무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온 방식의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견디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은 그동안 멀리 두어야 했던 감정들이 안전하게 표현되고 드러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감정들이 본인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들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한 답답함이나 이유 모를 눈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함께 견디고 살펴보는 과정 속에서, 흐릿했던 마음의 윤곽이 조금씩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진다해서 그 모르겠음은 성격적인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온 마음의 방식일 수 있으며, 그 방식을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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