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두기와 채우기
물건을 정리하고 나면 빈 자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그대로 두기가 쉽지 않디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비워진 선반에는 다시 무언가를 올려놓고 싶고, 옷장에 여유가 생기면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어집니다.
또한, 이렇게 채우려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일정이 비면 약속을 만들고,
잠시 시간이 생기면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을 찾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침묵이 길어지면 어색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어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왜 빈 자리를 그대로 두기 어려울까생각해봅니다.
빈 자리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는 분명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이거나 생각하지 못한 채 지나온 경우들이 있습니다.
경험은 지나갔지만 그 경험에서 생겨난 감정은 아직 충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마음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지내는 동안에는 마음 한편에 밀려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혼자 되거나, 할 일이 없는 순간에 이유 없이 허전해지거나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나고,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이 뜻밖에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즉, 빈 자리가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가려져 있을 때에는 잊을 수 있었던 마음이,
비어 있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마음의 빈 자리를 느낄 때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답답함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빠르게 다른 일에 몰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채우기’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마음의 '빈 자리'를 마주하지 않기 위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빈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 곧바로 다른 일을 하기 보다는
'빈 자리'를 그대로 두고 그 시간에 머물러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조금씩 이어가볼 수 있습니다.
비어 있는 그 마음속에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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