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사용해보면 가끔 묘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예전에 지나가듯 말했던 취향이나 고민,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AI가 기억해 두었다가
어느 날 새로운 질문을 했을 때 이전의 것들과 연결해 답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도 했었나?”
처음엔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기이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해 줄 때 관심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오래전에 나눈 이야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AI의 기억은 조금 다른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이미 잊어버린 이야기들을 AI는 기억하고,
서로 다른 시기에 나누었던 내용들을 연결해 지금의 질문에 답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묘한 역전이 일어납니다.
내가 잊어버린 것을, 나 아닌 존재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낯선 것은 그 기억들이 단순히 보관되어 있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자료로 다시 돌아올 때입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답을 만나면 내가 미처 연결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흩어져 있던 경험 사이의 연결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과거의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지금의 나를 잘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일까?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어떤 경험은 잊고, 어떤 생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한때 자신을 설명했던 믿음이나 관계의 방식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계속 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록만으로 현재의 한 사람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 했던 말은 분명 나의 일부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 전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자신보다 자신의 과거를 더 정확하게 기억할 때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하는 존재가 생겨난 시대에,
AI는 우리에게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변화하고 있는 서로를 계속 새롭게 만나는 데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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