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에 대하여
“어차피 저랑은 안 맞는 사람이었어요.”
“생각해 보니 잘된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아쉬운 일은 아니에요.”
이 말들은 모두 그럴듯한 이유처럼 들리며,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이유는 충분하지만 감정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분명 관계는 끝났는데 슬픔은 없고, 상처받은 일은 있었는데 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속에는 언어로만 표현되는 설명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왜 괜찮은지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괜찮은 척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감정은 너무 아프고, 어떤 상실은 너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는 그 감정을 바로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어차피 잘 안 됐을 거야.”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
이런 이유와 설명은 마음을 잠시 안심시켜 줍니다.
이러한 마음의 방식을 합리화라 하는데,
합리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나 감정을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필요한 방어기제이지만,
자신이 왜 힘든지 설명하기에 익숙해지고 반복하면 정작 무엇이 아픈지는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미 없이 반복되는 듯한 무료함과 우울감을 느끼게 합니다.
분명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우울감이나 무료함을 겪는 경우,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느껴지지 못한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해서 더 좋은 이유를 찾기보다는,
이유를 찾느라 그냥 지나쳐버렸던 마음을 다시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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