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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

관리자 2026-09-28 (월) 13:06 16시간전 3  

타인을 닮으며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사람들을 닮아 갑니다.

말투나 취향처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책임감, 여러 생각처럼 어느새 자신의 성격이 되어 버린 부분도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과정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동일시는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과 삶의 태도 등이 자신의 성격과 태도에 스며들면서 자신의 성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늘 가족을 책임지던 부모밑에서 자랐기에, 자신도 모든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부모의 성실함을 배운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위치보다 자신이 책임지는 쪽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부모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 부모와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한 가지 방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시는 자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인 동시에,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불안을 견디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Freud도 동일시를 자아 형성의 중요한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중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관계가 달라지거나 그 사람을 잃은 뒤에도, 그 사람의 어떤 특성이 자신의 성격과 태도의 일부로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나답다’고 느끼는 모습 가운데에는 중요한 사람들과 맺어 온 관계의 흔적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내가 책임져야 마음이 놓인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

“도움을 받기보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책임감이나 성실함, 어려움을 견디는 힘처럼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능력이 되었을 수도 있기에 이런 태도가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모습 이외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생길 수 있습니다. 

항상 강해야 한다면 약해지는 순간을 견디기 어렵고, 늘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면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맡지 않아도 될 몫까지 떠안으면서도 물러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때 갈등과 불안을 풀어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부모를 닮아서 그렇다”는 설명이 아니라,

왜 강한 사람이어야 했는지, 왜 도움을 받는 위치는 불편한지,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관계와 감정을 견디는 데 필요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원래 내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에도 관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더 이상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른 가능성을 허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내사(introjection)와 동일시는 매우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하지만,

내사는 중요한 사람과의 경험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내적 세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과 관련됩니다.

반면에 동일시는 그 사람의 어떤 특성이나 태도를 자기 것으로 삼아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 마음에서는 두 과정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뚜렷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차이를 알아두면, 마음속에 어떤 관계가 남아 있는지와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 왔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일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구를 닮았는지 알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어떤 모습이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고, 그 모습이 그동안 나를 살아가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 의미를 충분히 알게 될 때,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연구소 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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