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만날지, 언제 시작하고 끝낼지, 얼마나 자주 만날지, 비용과 세션 변경 및 취소는 어떻게 다룰지,
분석가의 휴가나 세션 밖의 연락은 어떻게 할지 등을 미리 정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세팅(setting) 또는 분석의 틀이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보면 분석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절차적 약속처럼 보이지만, 정신분석에서 세팅은 단순한 운영 규칙에 그치지 않습니다.
즉, 일정한 틀이 지켜지는지와 더불어 일정한 틀이 있어야 분석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세션에 오던 분이 유난히 늦고 세션을 취소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분석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질 때 갑자기 그만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정해진 분석시간이 평소보다 짧게 느껴져서 제 시간에 세션이 끝나는 것이 유난히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분석의 틀에 대한 반응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반응을 모두 무의식적 의미가 잠재되어 있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현실적인 사정과 함께 왜 지금 이 순간에는 평소와 다른 마음이 생겼는지를 분석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분석 세팅은 전이와도 연결됩니다.
같은 시간과 장소, 분석가의 휴가, 세션의 종료도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합니다.
누군가에게 정해진 시간은 자신을 위해 마련된 안정적인 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자유를 제한하는 원칙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세션 시간이 되어 마무리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거절과 버려지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렇게 불편한 정서와 경험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라,
분석 안에서 '왜 지금, 이런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고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팅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고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적인 사정과 개인의 상황은 당연히 고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경직성을 구별하는 것으로, 세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책임은 무엇보다 분석가에게 있습니다.
분석가는 분석 관계에서 불편함이 생길 때마다 조건을 바꾸거나 자신의 방식을 정당화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먼저 살핀 후에 내담자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일 분석가가 본인의 불안에 압도된다면, 내담자를 지나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원래의 약속을 자꾸 바꾸거나, 갈등을 피하려고 예외를 반복해서 허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자신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원칙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세팅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분석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 분석가로서의 역할을 구별하도록 돕는 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계가 있기 때문에 분석가와 내담자는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느끼고 친밀한 경험을 나누면서도,
그 관계를 사적인 관계로 바꾸지 않고 분석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즉, 분석의 틀의 진정한 의미는 분석 관계에서 생긴 경험을 곧바로 행동의 변화로 해결하기보다
분석가와 내담자, 두 사람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분석의 자리를 지켜 주는 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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